불면의 바람
최승헌
새벽 한 시의 적막이 검버섯처럼 피어오르는 밤, 불면에 걸린 바람이 창문
을 두드린다 잠들지 말라고 혼자만 잠들지 말라고 나를 부르는 소리다 나는
창문아래 움츠리고 앉아 숨을 죽인다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최대한 낮은 자
세로 엎드려 있어야 한다 미친 듯이 달려드는 애절한 구애는 애초에 내가 먼
저 손을 내민 거다
한때 내 슬픔이 바람을 유혹하다가 저 날카로운 칼날에 몇 번 베인 적이 있
다 처절하게 망가져 버린 흔적이 있으므로 나는 바람이 두렵다 조금씩 아물
어가는 내 상처가 덧날까봐 두렵다 은폐란 단어는 이럴 때 떠오르기도 하지
만 언제 휘어질지 모르는 굴곡의 힘이 있다
바람의 출구가 어디쯤인지 알 수 없는 건 그 수상한 이력을 알고부터다 다
소곳하지만 가끔 미쳐 날뛰는게 문제다 바람이 흐르는 쪽으로 머리를 갖다
대면 기억이 착시현상으로 겹쳐지거나 쪼개지는 것도 내가 어둠속에 있다는
증거다
지극히 몸을 낮추어 있을 때 바람은 내 뼈 속 싸리문을 열고 들어오는 법을
알고 있다 캄캄한 어둠속, 나는 더 이상 갈 곳이 없고 바람은 자꾸만 나를 불
면 속으로 밀어 넣는다
미네르바 201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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