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60

나이가 든다는 건

햇살 좋은 가을 아침, 서재에 홀로 앉아 녹차 한잔 우려내어 마신다. 이른 아침 차와 벗하면 이런저런 생각이 잠시 떠오르기도 한다. 이 시간은 하루의 업무를 시작하기 전 나 자신과 먼저 만나는 시간이다. 젊어서는 마음이 바빠야 하고 나이 들어서는 마음이 한가해야 할 것 같다. 젊은이가 한가하면 애늙은이가 되는 것처럼 늙어서도 바쁘기만 하면 몸도 마음도 피곤하기만 할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바쁨이란 일을 말하는 것이다. 나이 들어서는 일을 하되 너무 많은 일은 하면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이야 가만있어도 세월따라 들겠지만 사실 나이 든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아무래도 조심해야 할게 많아서이다. 젊어서는 뭘 해도 아름답고 좋게 보이는 것도 나이 들면 그렇지 않다. 나이 값이란게 있으니까 쉽지..

산문 2022.09.15

가을이면 찾아오는 친구

태풍이 자나간 하늘이 고요하다. 가을의 향기 퍼져 나가는 드높은 하늘이 있기에 우리네 마음자리도 이렇게 고요한 것을.... 파란 하늘 위 떠도는 구름, 대숲 바람소리, 샛강을 흘러 내려가는 물줄기, 작은 바람에도 일렁이는 갈대숲, 붉은빛으로 물든 낙조,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 서서히 비어져 가는 들판..... 이 모든게 내게는 禪友다. 그리고 가을이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고요한 그가 좋고 품 넓은 그가 좋다. 친구 중에서도 자연의 친구가 제일 좋은 것 같다. 살다보면 친구와의 수다도 좋겠지만 자기만의 시간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을 성찰하고 돌아보게 된다. 가을이다. 내게 禪友같은 친구가 많아지는 계절이다. 차 한잔 속에도, 책 한줄 속에도, 음악 한 소절 속에서도.....

산문 2022.09.12

봄을 " 저 못된 것들 "이라니....

저 환장하게 빛나는 햇살 나를 꼬드기네 어깨에 둘러맨 가방 그만 내려놓고 오는 차 아무거나 잡아타라네 저 도화지처럼 푸르고 하얗고 높은 하늘 나를 충동질하네 멀쩡한 아내 버리고 젊은 새 여자 얻어 살림을 차려보라네 저 못된 것들 좀 보소 흐르는 냇물 시켜 가지 밖으로 얼굴 내민 연초록 시켜 지갑 속 명함을 버리라네 기어이 문제아가 되라 하네 저 못된 것들/ 이재무 사람은 때론 한번쯤 일탈을 꿈꾼다. 의무와 소유 다 내려놓고 봄처럼 피어나고 싶은 꿈.... 꿈이 현실에 갇혀있으면 식상하고 재미없다. 봄을 비유한 이 시도 그런 일탈을 꿈꾸는 모양이다. 사실 시어의 과감한 비유도 비현실적인 환상임을 알 수 있다. 당돌하지만 혹은 과감하지만 마음 밭을 일구고 꼭꼭 다지는 봄 같은 시가 흥미롭고 자꾸만 눈길이 간..

산문 2022.02.08

만남

나이 들수록 만남이 귀찮아진다는 사람도 있고 나이 들수록 사람은 자주 만남을 가져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나는 공적인 일을 빼고는 비교적 만남이 적은 편이다 부산함보다 조용한걸 좋아하다보니 그런것 같다 그런데 나이들고보니 이게 다 좋다고만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동안 만나왔던 사람으로도 충분해서 더 이상 새로운 친구는 필요 없다는 사람도 있고 또 나이 들수록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새로운 친구가 필요하다는 사람도 있다 새로운 만남이건 오래된 만남이건 둘 다 그 자체의 의미는 있는 것 같다 오래 되었다고 다 좋을 수도 없고 새롭다고 다 나쁜 건 아니다 만남이 기쁨만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너무 큰 기대치는 안 갖는게 좋다 만남으로 인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사람도 있을 ..

산문 2022.02.08

시를 읽다

햇볕 좋은 가을날 한 골목길에서 옛날 국수가게를 만났다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왜 간판도 없느냐 했더니 빨래 널 듯 국숫발 하얗게 널어놓은 게 그게 간판이라고 했다 백합꽃 꽃밭 같다고 했다 주인은 편하게 웃었다 꽃피우고 있었다 꽃밭은 **라고 했다 옛날 국수가게/ 정진규 이런 가게에 가서 국수를 먹어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어릴 적 골목에서 보던 국수집은 마치 빨래처럼 국수를 줄에 널어놓고 있었다. 햇빛과 바람에 말려지면서 한 그릇의 맛있는 국수로 사람들의 입맛을 즐겁게 했지. 정진규 시인, 그러니까 나의 문단 스승은 그걸 보고 백합꽃 꽃밭이라고 하셨다. 맞다. 하얗게 널린 국수가 하얀 백합꽃으로 연상 되셨겠지. 백합의 은은한 향기가 어디 꽃에만 있겠는가. 국수에도 그런 게 있다. 국수를 먹다..

산문 2021.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