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속으로

최승헌 2005. 11. 21. 10:55

 

                         

                             산 속으로

 

                                                       최승헌

 

 

산을 열고 산 속으로 들어갔어

깊이 들어갈수록

생각의 잔영들이 벌거벗은 가지 위에 쓸쓸하게 걸려 있었어

그것들은 마치 내가 부양했던 삶이 중력처럼 감당할 수 없는 힘으로

내 안에 머물러 있었던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어


20세기 뻔뻔스러운 땅에

뿌리를 박지 못해 서성이던 그림자를 기억해

그림자 속에 암울했던 청춘의 두통이 진공청소기처럼

강한 흡인력으로 밀착되어 왔지

암울했던 날을 기억하는 것만큼 찬란한 욕망은 없어

한때는 그랬어

내 욕망이 착륙해야 할 땅이 너무 비좁다는 것을

거대한 인생의 식탁을 찾아 포식하는 꿈을 꾼다는 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날마다 잠들지 못하는 바람의 울음소리를 들었어

무엇으로 우리가 열망하는 저 피안의 세계에

도착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어

구원이란 시장바닥 좌판 위에

풀어놓은 한 마리 생선의 이름이었으니까


산이 보였어

그때 두근거림으로 문을 열었던 산에서

햇살은 한 생애를 이끌어 왔던 튼튼한 언어들을 말리고 있었지

무료한 시간들이 하나 둘씩 부식되어 무너지고

내 꿈꾸던 청춘도 사라지고 있었어

들여다보면 산은 언제나 그렇게 내게서 비켜나 있었던 것 같았어


문득 부재중이던 눈물이 보고 싶었어

다시 인생의 반환점이 그어진다 해도

날마다 알 수 없는 빛깔의 지친 유서를 쓰던

이 땅에 묻어있는 내 흔적들을 사랑하고 싶었어

그리고 그것이 아득한 인생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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