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서랍을 먹고 산다

최승헌 2005. 11. 21. 21:44

 

            추억은 서랍을 먹고 산다

 

                              최승헌


 

 서랍을 열고 추억 몇 장을 접어 넣는다

그때마다 추억이 서랍 안에서 영토를 확장하는지

드문드문 마른버짐으로 피어나고 있다

추억은 과거로부터 변형된 생각의 살점들을

뜯어먹지는 않는가 보다

사랑은 아직도 잔인한 아가미로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고 있었고

정욕처럼 솟구치던 그리움이

겁도 없이 몸을 섞었던 세상에

외눈박이 사랑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그렇구나, 눈 먼 자만이

추억을 신주神主* 모시듯 끌어안고 사는구나

쥐똥처럼 작은 추억 한 자락에도

때로는 눈물을 들먹이고

또 때로는 분노를 들먹이고 있다

그것들이 예고 없는 벌초로

무자비한 낫 끝에서 베어 질까봐

서랍 안에서도 활발한 번식을 하는 것이겠지


때가 되면 추억도 그 자리가

생의 마지막 입관자리가 아님을 안다

다시 누군가의 상처 속에 들어가

그 상처를 핥고 애무하면서

질퍽한 그리움을 발효시켜야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 신주 : 죽은 사람의 위位를 베푸는 나무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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