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최승헌 2008. 8. 13. 23:01

 

 

 

                                                      

                                                                  

                                           살아남은 자의 슬픔

 

 

                                                                                       최승헌

 

 

 

 브레히트의 시「살아남은 자의 슬픔」처럼 생이란 처절하고 슬픈 존재라는 듯 어둠 속을 헤치며 들려오는 생선

장수의 외침이 참 쓸쓸하게 들립니다. 어둠이 슬슬 하품을 하는 이 늦은 시간까지도 귀가하지 못하고“갈치나 고

등어가 다섯 마리에 이 천 원이요!”하고 외쳐대는 그를 사람들은 아무도 내다보려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생선을 싸게 판다고 한들 다들 저녁상을 물린지도 한참이나 되었고 또 가족들이 편히 쉬고 있는 마당에

누가 문을 열고 밖에 나가서 비린내 나는 생선을 사고 싶을까요? 그래서인지 떨이를 외쳐도 누구 한 사람 나와

보지 않습니다. 빨리 팔고 가족들이 기다리는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싶어 할 저 생선장수의 피곤하고 쉰 목소리가

어쩌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슬픔의 형상은 다양하게도 찾아오는 것이어서, 사람들은 고통의 실체를 잘 모르면서도 어느 날 문득 살아있음

자체가 고통을 되새김질하는듯하여 잠 못 이루는 밤을 맞이하곤 합니다. 우리의 열정적이고 치열한 정신을 훔쳐

가는 문학도 아마 고통과 슬픔이 반복되는 이런 현실 속에서 더 빛이 나고 힘을 얻겠지요.

시를 쓸 때마다 겪는 정신의 홍역은 저 슬픔과 고통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 또 다른 하나의 변

혁된 창조를 만들어가는 데 참 의미가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30년 가까이 시를 써오면서 시는 추상이 아니라 현실이며 생명이라는 것을 점점 실감하게 됩니다. 오늘 밤은 생

선장수가 제게 경책을 하나봅니다. 저의 어설픈 인생에, 그리고 어설픈 문학에 말입니다.

책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으니 바깥 소리만 들립니다. 세상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 속에 모래알

같은 점 하나로 살아서 내가 숨 쉬고 있습니다.

잠시 행복한 시간이 되고 싶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차는 슬플 때 마셔야한다

 

 

 

“차는 슬플 때 마셔야 한다. 비탄의 한숨 사이에 마시는 차는 따뜻한 위로의 약이다.

차는 기쁠 때 마셔야 한다. 들뜨고 산만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진정의 손길이기 때문이다.”

 

 다인茶人연호택 교수님의 말씀을 옮겨 보았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차를 통해 마음을 다스리라는 얘기로 들립니다.

불교에서는 차를 선다禪茶라고도 합니다. 참선하듯 그렇게 차를 마시는 것이지요. 술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만

들지만 차는 마음을 가라앉혀 줍니다.

차로 마음을 다스리고 자신을 찾아가는 선정에 들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습니다. 마음을 찾아가다보면 깨달음이

보입니다. 무념무아의 경지가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이지요. 마음 하나 제대로 알면 그 자리가 깨달음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 자리는 어리석은 중생의 삶을 모질게도 끌고 다니는 탐진치 삼독三毒이 영원히 사라지는 자리

입니다.

 

 새벽잠이 많은 아이들이 아직 보이지 않는 놀이터에는 동네 개들만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의 맑은 공기

가 정겹게 느껴지는 일요일입니다. 산다는 것은 분주함이 아니라 한가한 마음인 것 같습니다.

마음이 편안할 때 하루의 일상도 의미 있는 것일 테니까요. 이따금 서재에서 잠을 설친 새벽이면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나가 새벽하늘이 멀리 보이는 근처 놀이터 의자에 앉아 이렇듯 세상이 열리는 소리를 듣곤 합니다.

약수터를 다녀오는 부지런한 이웃들의 상기된 얼굴에서, 혹은 인적 드문 새벽, 신작로를 부지런히 쓸고 있는 환경

미화원 아저씨들의 주름진 얼굴에서 건강한 삶의 흔적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삶은 아름답습니다.

 

“자신을 다스림은 가을 기운을 띠어야 하나

세상을 살아감은 봄기운을 띠듯 해야 한다.”

 

 새삼 明ㆍ淸시대의 옛 글에 있는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겨봅니다. 자신에게는 냉철하고 준엄하게, 그리고 남에게는

온화하게, 늘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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