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

후배에게 쓰는 편지

최승헌 2010. 5. 4. 09:31

 

 

영태에게

 

 

잘 있지?

나도 바쁘다는 핑게로 무심하게 지내온 시간들이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게 무탈하고 건강하다는 증거 아니겠니.

며칠 감기몸살로 앓아누웠다 일어났어.

아직도 몸이 완전히 회복은 안 되었지만 몸살로 힘들었던 간밤에 비해 오늘은 좀 편안하네.

모처럼 컴퓨터에 앉아 글 좀 정리 하려니 네가 보낸 메일이 와 있더구나.

읽으면서 참, 열심히 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지.

소설에 이어 언제 이런 시까지...

 

그런데 먼저 묻고 싶은 게 있다.

이 시집을 내는 목적이 문단의 관심을 갖기 위한 건지(등단해서 시인이 되고자하는...)

아님 등단에 상관없이 그냥 지인들이나 주위 사람들과 함께 시집을 엮어 나눠 보고자하는

공유의 의미가 있는 건지 그걸 잘 모르겠네.

이걸 알아야 더 정확하게 네 시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만약 전자라면 시집을 내는 것이 우선이 아니고 시를 좀은 다듬을 필요가 있고

(요즘은 워낙 잘 쓰는 젊은 신인들이 많아서...) 후자라면 그렇게 많이 신경을 안 써도 될 것 같기도 해.

보내준 시를 읽으면서 시적 관점에서 본 몇 가지 느낀 점을 쓸까해.

혹, 마음에 들지 않는 지적이 있더라도 그건 영태의 문학적 재능을 아끼는

내 마음이라 생각하고 읽어 주었으면 한다.

 

전체적으로 시적 이미지나 상상력의 깊이는 무한한데 그것을 시어로 건져 올리는 작업이

좀 단단하지 못하고 허술한데다 더러 복고풍 같은 작법이 눈에 띄네.

시를 잘 쓰는 시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사법이 때론 시가 진솔하지 못하고 가식적인

느낌이 든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시가 창작인 이상, 시를 만드는 그들의 시작이

완성도가 높게 나오는 이유는 무얼까?

그것은 수사법을 잘 활용해서 쓰는 노련한 테크닉이라고도 할 수 있지.

먼저 시를 쓸 때 화자가 나타내고자 하는 주체적 의미가 무엇인지 또는 시어로써는 적합한

언어인가 하는 문제부터 고민해야 하는 부담은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똑 같을 꺼야.

 

내 개인적인 소견은 네가 시보다는 소설이 훨씬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

그동안 현대시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혼자 동떨어져 시를 쓴 게 아닌가하는 느낌도 들고...

그리고 시 제목들은 너무 단순한 것이 많아서 더러 조금씩 수정했으면 좋겠다.

이왕 세상에 시를 내놓으려면 문단의 눈도 흐름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작품의 문학성에 대해선 평자의 일갈도 있어야 하니까...

 

네가 불자라 그런지 불교적 의미가 묻어나는 시가 많이 보였는데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시어에 너무 불교 색깔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싶더라.

시가 나무라면 불교적 의미는 잎보다는 뿌리에 있을 때

사유의 폭이 더 깊지 않을까 싶어서 하는 말이야.

이건 기독교 사상도 마찬가진데 시에 있어서 종교적 언어는 자칫 무슨 교훈처럼 딱딱해

보일 수도 있어. 이런 언어는 숨어있으므로 더 빛이 나는 법이니까...

하지만 네 작품이 다 이런, 즉 내가 지적하고 싶은 그런 작품만 있는 건 아니고

현실성과 서정성이 묻어나는 선명한 색깔의 좋은 시도 눈에 많이 띄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시를 만드는 기초공사를 다시 한 번 꼼꼼히 재고해서 시집을 만든다면 좋은 책이 탄생 할꺼야.

 

시집 출판할 출판사를 추천해 달라고 했는데 사실 내가 잘 아는 곳이 없어.

나도 지난번 시집 낼 때 출판사에 원고 보내놓고 반년식이나 기다렸지. 문예지 전문 출판사의

편집위원들이 심사해서 출판을 결정하는 거라서 쉽지가 않아.

시집을 아무 출판사에서나 만든다면 그건 쉽지만 이왕이면 좋은 시집을 내는 이름 있는

출판사가 좋지만 거긴 참 담이 높아.

그러려면 거기에 합당한 작품이나 지명도가 있어야 하니까...

 

다시 말하지만 시집을 내는 것보다 우선 작품의 질을 더 높여야해.

네가 좋은 소설을 썼지만 시도 마찬가지로 등단의 관문을 무시해서는 안되는 거지.

칭찬보다 잔소리를 해서 미안하다.

더 좋은 글을 쓰라고...그리고 너의 재능이 아까워서 하는 소리야.

 

오늘 오랜만에 네 메일을 받으니 문득 그 옛날 부산 앞바다에 넘실대던 파도와 

갈메기떼들을 바라보며 밤늦도록 시를 합평하던 우리 동인들의 얼굴이 떠오르는구나. 

다들 어디서 무얼 하며 사는지...

참 많은 세월이 흘렀다. 새파랗게 젊은 청춘들이였지만 그때 그 고뇌의 시간 속에서도

시는 우리들의 유일한 숨통 이였고 도피처였지.

 

건강에 유의하고 잘 지내길 바란다.

좋은 소식 들리길 기대할게.

 

시흥에서 승헌

 

 

어제 오랜만에 후배가 메일로 소식을 보내왔다.

시를 한번 읽어보고 평을 해달라는 부탁과 올해 시집을 내고 싶다며

본인이 써놓은 시 30편을 파일로 첨부해서 보내온 것이다.

영태는 고향 부산에서 함께 시동인회를 했던 내가 아끼던 후배인데

명석하고 시를 열심히 잘 쓰던 인재였다.

내가 출가 한 후 서로 소식을 모르다가 우연히 내 소식을 들었는지

몇 년전에 그들 가족이 우리절을 다녀간 이래 지금도 가끔씩 부부가 나를 찾아오기도 한다. 

이제는 영태도 어느듯 오십을 넘긴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다.

나도 그렇고 세월은 참 빠르다.

새삼, 우리들 이십대의 자화상같던 치열한 시의 열정들이 그립다.

밤 늦도록 그 많은 시를 읽고 토론하면서 인생을 말하던

젊은 시인지망생들의 오만과 객기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보내온 시를 보며 나는 많은 생각에 잠긴다.

내 마음에는 잘 안들어도 그는 얼마나 심혈을 기우려 이 시들을 썼을까 싶어서다.

영태는 시를 좋아해서 쓰고는 싶어하는데 그동안 시어가 많이 무디어진 것 같다.

예전의 그 패기어린 섬뜩거리던 글은 잘 보이지 않는다.  

소설을 두권이나 냈는데 심도있게 잘 쓴 작품이지만 시는 좀 더 다듬어야 할 것 같았다. 

먹고 사느라 오랜시간 시를 손에서 놓았던 것 같다. 시의 감각을 놓쳐버렸는지 

시가 너무 교훈적이고 현실감이 떨어져서 안타까웠다.

누구보다 시를 잘 쓸 수 있는 유능한 글쟁이였는데....

이 땅의 가장들이 가장 시급한 경제문제에 매달려 있는 사이

자신의 개인적 취향이나 재질 같은건 많이도 묻혀버린 쓸쓸한 현실이다. 

 

다시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시를 썼으면 좋겠다. 선배로써 안타깝다.

무엇보다 그가 시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영태는 성격은 조용하고 온순했지만 누구보다 시에 대한 열정과

현실에 대한 저항 정신이 살아있었던 후배로 기억하고 있다.

학구열이 많고 집중력이 강해서 그 덕에 일찌감치 환경공학 박사가 되었다.

현재 대학에서 환경공학을 강의 하면서 국가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2010 . 5 . 4

 

 

 

 

 

 

 

 

 

 

 

 

 

 

37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