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詩評

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축하 평

최승헌 2009. 3. 27. 17:30

 

 

 

 계간문예' 다층' 2009년 신춘문예 특집 청탁원고

 

 

 

 

                                    2009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축하평

 

 

 

이민화의 ‘오래된 잠을’ 읽고

 

 

                                                                                            최승헌

 

 

 

아버지의 부재는 쓸쓸하다.

한때 온가족이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살았던 집은 폐가가 되어 적막속에 잠들어 있지만 그 속에서 들리는 아버지의 음성이

메꽃을 피운 것 같다. 시인은 폐허가 된 옛집에서 아버지를 기억하다 왜 메꽃을 보았을까?

메꽃은 칡넝쿨이나 환선풀처럼 누군가를 넘어뜨리거나 등을 밟고 줄기를 뻗는 그런 풀이 아니라 들에서 조용히 피었다

사라지는 꽃이다. 마치 평범하고 소박한 아버지의 삶처럼 묵묵히 일하며 욕심 없이 살면서 식솔들을 보살펴야 했던 고단한

아버지가 거기 옛집의 초가지붕 위에서 메꽃으로 피어나 남아있는 가족들을 지켜주는 건 아닌지....

 

하루해가 저물면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의 귀가로 집안은 부산하게 움직이고 온돌방을 데우느라 군불을 지피고 또 저녁

식사준비를 하며 식구들은 편안한 안식처에서 하루를 접었을 것이다.

그 옛날 바쁘게 돌아갔던 수도꼭지가 울음을 토해내며 텅 빈 저녁을 맞이하는 풍경이나 붉은 노을이 지쳐 땅거미가 내려

앉으면 먼지 쌓인 잠을 털고 비로소 바라보게 되는 아버지의 존재는 참으로 위대했다는 것을 시인은 깨닫고 있다.

여기서 잠은 눈을 감고 쉬는 그런 잠이 아니다. 잠은 현실을 떠난 적멸이 아니라 바로 살아 숨쉬는 생존이기 때문이다.

 

이민화의 ‘오래된 잠’이라는 시에서 시인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아버지라는 상징성을 통해 유년의 추억과 고향집에 대한

서정적 향수가 애잔하게 흐르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시어에서 우러나는 감정의 표출이 가볍지가 않아 단

단한 시의 지속성을 느끼게 하는 것은 쉽게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눈으로 단숨에 읽어 내리는 시가 아니라 체온이 담긴 가슴으로 읽어야할 시라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세상을 떠

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긴밀하게 연결된 이미지들이 올실로 짜여져 우리에게 따뜻하게 부각되어 온다.

 

현대시가 복잡하고 난해한 것을 현대사회 속 문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불가피한 것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겠는가.

시가 이런 겉치레를 벗고 좀 더 구체적이고 소박할 수는 없는 걸까? 이 시에서 느끼는 잔잔한 묘사처럼 진솔하고 훈훈한

감성을 체험할 수 있다면 부초처럼 떠도는 척박한 세상에서 오래 행복할 것 같다.

좋은 시는 한편의 멋진 영화를 관람한 것처럼 한참 설레 인다. 이 시를 통해 그런 설레임을 갖게 되는 건 나만의 관람 평

이 아니기를 기대해본다.

쓰는 것보다 쓰지 않는 것이 더 힘들고 아팠다는 시인의 마음을 소중하게 읽으며 작품속의 묘사들이 형성하는 시적의미

를 깊게 생각해 본다. 이번 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계간문예 ' 다층' 2009년 봄호

 

 

 

<2009 한라일보 신춘문예>

 

오래된 잠

 

                          이민화

 

 

다섯 송이의 메꽃이 피었다.

아버지의 부재를 알리는 검은 적막을 깨고,

돌담을 딛고 야금야금 기어올라

초가지붕 위에 흘림체로 풀어놓는다.

무게를 견디지 못한 바람벽이

움찔 다리를 절면,

마당가에 선 감나무도 키를 낮춘다.

아버지의 귀가에서 나던 솔가지 타는 냄새

너덜너덜해진 문틈으로 새어나오고,

가쁜 숨을 몰아쉬던 수도꼭지

끄윽끄윽 울음을 뱉어낸다.

산 그림자 마당으로 내려서면,

거미줄에 걸린 붉은 노을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먼지 쌓인 잠을 쓱쓱 문질러 닦아내면

아버지의 오래된 시간이 푸석한 얼굴로 깨어난다.

늙은 집이 메꽃을 피우고 있다.

 

 

 

 

 

37713

 

'시평 詩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버려진 손  (0) 2007.11.29
詩評  (0) 2007.05.31
그러나 어쨌던  (0) 2006.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