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

시인의 줌렌즈- 따뜻함과 직관력 / 최승헌

최승헌 2010. 12. 10. 16:30

 

시인의 줌렌즈- 따뜻함과 직관력 / 최승헌

 

 

시인의 줌렌즈

 

 

 

 

 

 

                                                                                                                                                            

 

 

 

                                                                  최승헌 --- 마경덕

 

 

 

따뜻함과 직관력

 

 

                                                                                                 최승헌 (시인)

 

 

 

  사계절 피고 지는 꽃이 있어 우리네 삶은 덜 쓸쓸해지는 것이라 한다.

화려한 꽃은 화려한대로 수수한 꽃은 수수한대로 고유의 향기를 품고 있으니 그 모양과 색깔이 어떻든 간에 모두 아름답고 귀한 존재일 것이다. 그래서 이런 꽃들을 떠올리다보면 꽃이 인간의 마음을 참 많이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책상위에 앉아있는 작은 화분 속 풍란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런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작은 몸으로 해안의 절벽에 붙어 온갖 풍랑을 헤쳐 왔음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정신과 은은한 향기가 있기 때문이다.

 

  내게도 이런 풍란 같은 이미지를 느끼게 하는 벗이 있으니 그가 마경덕 시인이다. 서로 바쁘게 사느라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마 시인은 어쩌다 한번을 봐도 언제나 넉넉한 마음과 따뜻한 정을 주는 사람이라서 내게는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다.

나는 마 시인에게서 삶과 시가 하나이며 꿈과 열정이 하나인 불이不二적 기질을 보는 것이 반갑다. 비교적 늦은 나이의 등단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젊은 시인보다 왕성하게 활동하며 주목받는 시인으로 살고 있는 것은 마시인의 타고난 부지런함과 성실함,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시의 열정이 만들어낸 귀한 열매다.

 

  마시인의 하루를 살펴보면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알 수 있다. 지금도 네군데의 문화센터와 문학단체(시마을문예대학)에서 시 창작 지도를 하고 있고, 인터넷 최대 시 전문 싸이트인‘내 영혼의 깊은 곳’(이 블로그는 2004년 개설 이후 지금까지 4백만 명에 가까운 방문객이 다녀감)을 운영하고 있는 부지런함을 봐도 그렇다.

그동안 이곳을 통해 시를 발표하고 감상했던 기성시인들과 시를 공부하기위해 찾아온 시인 지망생들의 수가 엄청나게 많은 것도 좋은 시의 보급을 위해 밤잠을 줄여가며 뛰었던 그녀의 노력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마 시인에게 한가한 사람도 아니고 신경도 많이 써야 할 일인데 왜 인터넷에 이런 시 전문 블로그를 만들었는지 그 이유를 물은 적이 있다. 그녀는 역량 있는 시인들 중에서 문예지의 발표 지면이 많지 않아 시가 빛을 못 보는 것이 늘 안타까웠다고 했다.

무명시인들의 시를 독자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또 처음 시를 쓰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시를 읽고 공부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한 것이라 했다. 번거로워서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마시인은 대담하게 뛰어 든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시 쓰는 일을 게을리 한 적이 없으니 참 부지런하고 대단하다 싶다. 더구나 대가족의 주부로서 챙겨야하는 집안일도 만만찮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왕성한 활동만으로 마경덕 시인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시인에게서 중요한 것이 먼저 사물을 보는 능력이라면 그 방법을 파악하고 길들이는 눈이야말로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지름길 일 것이다. 마 시인은 바로 이 같은 강점을 갖고 있는 시인이기에 사물의 경계와 해체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문제작을 쓸 수 있는 것 같다. 여기 내가 좋아하는 마 시인의 시‘신발론’을 옮겨 본다.

 

  2002년 8월 10일

 

  묵은 신발을 한 무더기 내다 버렸다.

 

  일기를 쓰다 문득,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

를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와 병원으로 은행과 시장으로 화

장실로, 신발은 맘먹은 대로 나를 끌고 다녔다 어디 한번이라

도 막막한 세상을 맨발로 건넌 적이 있었던가 어쩌면 나를 싣

고 파도를 넘어 온 한 척의 배 과적過積으로 선체가 기울어버린.

선주船主인 나는 짐이었으므로,

 

 일기장에 다시 쓴다.

 

짐을 부려놓고 먼 바다로 배들이 떠나갔다

 

                    -‘신발論’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그의 등단작인 신발論에서도 보듯이 누구나 신고 다니는 신발이지만 시인이 느끼는 사물의 역발상적인 감각은 뛰어나다. 특유의 언어감각에 의해 신발과 나의 관계를 사물의 본질까지 파헤쳐 들어가서 치열하게 탐색하고 조명한 점에서 이 시의 우수성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는 표현이나‘파도를 넘어 온 한 척의 배 과적過積으로 선체가 기울어버린’같은 발상은 대가족을 보살피며 날마다 일인 몇 역을 소화해야하는 마시인의 고단한 일상을 보는 것 같아 진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5년 전, 서안나 시인이 시 지도를 했던 안산여성문학 송년회에서 우리는 초대시인으로 처음 만났다. 서시인이 평소 가깝게 지내는 주위의 몇몇 시인을 초대했는데 행사장에 나가보니 그 자리에 마경덕 시인이 있었다. 소탈하고 따뜻한 성품이 상대방을 참 편하게 해준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시흥에서 있은 시 합평회와 김나영 시인 출판기념회 등, 몇 번의 만남이 있긴 했지만 그리 자주 만나지는 못했고 가끔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다. 이심전심이라 했던가. 얼굴은 안 봐도 그냥 마음으로 서로를 믿고 격려해주는 벗으로 지내고 있다.

 

  작년 가을엔 마시인이 저녁을 사겠다고 해서 약속 장소인 서울 사당역으로 나갔더니 이제 막 수업이 끝나고 오는 길이라며 반갑게 달려와 손을 잡는다. 멋 내지 않은 수수한 바지 차림으로 어깨에 배낭을 메고 있는 씩씩한 모습이 젊고 활기차게 사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언제 봐도 밝고 환한 얼굴, 상대에 대한 배려와 정이 묻어나는 훈훈한 온기를 갖고 있는 시인, 마시인은 그런 사람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인연은 좀 색다르다. 마경덕 시인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고 나는 불교의 출가사문인데다 서로 등단 햇수도 수 십 년이나 차이가 나는, 어쩌면 서로가 잘 모르는 사이일 수도 있다. 우리가 서로의 벽안에만 갇혀 있었더라면 여기까지 왔겠는가. 하지만 동시대를 살아 온, 같은 세대라는 동질감과 시라는 인연의 끈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내 신분 때문에도 그렇고 사실 나는 성격상 번잡한 문학행사에 가서 시인들과 친분을 나누며 어울릴만한 사람이 못된다.

오래 문단에 몸을 담고 있었어도 평소 알고 지내는 시인은 별로 없다. 그러나 그 몇 안 되는 시인 중에서도 마경덕 시인을 만났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그의 시적품성이 넓고 깊어 앞으로도 좋은 시를 많이 쓸 수 있을 거라는 믿음과 소탈하고 꾸밈없는 모습이 그런 마음을 갖게 한다.

 

 

 

  시인의 줌렌즈

 

 

 

                                 

                                                                                                                                         

 

                                                                                  최승헌 --- 마경덕

 

 

 

 

 

 

 

 

품이 넓은 사람

 

 

 

                                                                                                   마경덕(시인)

 

 

  그녀는 늘 회색 옷을 입고 산다. 내가 본 것은 얼굴과 손발뿐이다. 몸은 한 번도 옷 밖으로 나온 적이 없지만 나는 알고 있다. 무채색 옷에 가려진 그녀의 아름다운 여성을. 불교에 귀의한 그녀는 남자처럼 머리를 깎고 헐렁한 옷을 입고 살아간다. 몸의 굴곡을 지워버린 그 옷에는 얼마나 많은 절제와 침묵이 들어있을까? 모양새와 질감, 수묵화 같은 담백한 빛깔에서 서늘한 쓸쓸함이 묻어나온다. 젊음과 열망 사랑마저 옷 한 벌과 바꿔버린 셈이다. 대단한 각오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그녀가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될 그 무엇은 분명 그녀에게 전부일 것이다.

나는 그녀의 전부를 이해할 수 있다. 나 역시 나의 전부인 종교가 있고 원색의 화려함보다는 무채색의 소박함을 좋아해서 그녀와 닮은꼴이다.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최 시인에게 나이를 묻지 않았다. 언니뻘인지 동생뻘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에게는 그저 마음이 고운 아름다운 사람이다.

 

  최 시인은 많은 것을 품을 수 있는 넉넉한 품을 가졌다. 쩨쩨하고 인색한 사람 곁에 있으면 맘이 불편하지만 인품이 넉넉하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각기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남을 배려하는 따뜻함으로 서로의 마음이 닿았다. 나는 단순한 것을 좋아해서 마음에 복선을 깔고 상대를 대하지 못한다. 최 시인도 안팎이 같은 진실한 사람이다.

 

   언젠가 방생에 대해 말을 한 적이 있다. 살생을 금하는 것은 소극적인 선행이고 방생(放生)은 적극적으로 선(善)을 행하는 일이라 여겨 사찰에서는 불교도들이 해마다 방생을 하는데 최시인은 일부 사찰에서 하고 있는 물고기방생을 반대한다며 학승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방 사찰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가난한 학승시절, 학비도 벌고 포교를 하기위해 서울 시내 어느 사찰에 나가 법문을 했는데 그날은 방생의 폐단에 대해 말을 했다고 한다.

거북이나 물고기를 잡아 다시 살려준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잡혀온 그것들은 수질이나 환경이 다른 곳에 방생이 되는 셈이니 적응하려면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고 때로는 죽음까지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방생이라는 명분으로 생태와 자연을 파괴하는 일이라고 했는데, 마침 사찰입구에서는 방생접수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서로 방생에 대한 생각이 다르니 그날로 다시는 그 사찰에서 법문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낯선 서울 땅에서 그것도 학승의 신분으로 학비까지 벌어야했던 그 처지가 어디 만만한 일이겠는가. 마음이 여리고 감성도 섬세한 여성이지만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최 시인은 시 쓰는 일에도 게으르지 않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작품 또한 사유가 깊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한 번도 詩의 격을 낮춘 적이 없으니 수행으로 단련된 마음 또한 흐트러짐이 없다. 시집 한 권이 전부인 나보다 시집이나 산문집도 여러 권 가진 문단의 선배인데도 어려움 없이 대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지닌 성실함과 열정, 남을 먼저 챙기는 후덕함 덕분이다.

외로운 문단에서 최승헌 시인은 허물을 덮어줄 다정한 사람이며 참 좋은 문우이다.

 

  < 시안 > 2010년 겨울호 

 

 

              [출처] 시인의 줌렌즈- 따뜻함과 직관력 / 최승헌 |작성자 마경덕

 

 

 

 

 

 

 

 

 

 

 

 

 

 

 

 

 

37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