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침의 단상

마음이 떠나야 진정한 출가인 것이다

최승헌 2010. 3. 28. 07:52

 

 

 

출가재일 법문

 

                           

                                      마음이 떠나야 진정한 출가인 것이다

 

 

 

                                                                                                          최승헌

 

 

 

  낮에는 절에 관련된 일을 하다보니까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주로 늦은 밤 시간입니다. 새벽까지 컴퓨터에 매달려 원고를 쓸 일이 많은 나는 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아래층에서 쿵쿵거리는 반주 소리가 나면 아무것도 못하기 때문에 항상 아래층을 신경 쓰며 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주변 환경이 가장 열악한 곳 중 한군데서 내가 사는 셈이지요. 무엇보다 조용한 시간에 써야할 작품이 이런 부산한 시간 속에서 용을 쓰고 있으니 글을 쓴다는 것이 참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아마 우리 절 불자들 중에는 스님이 무슨 시를 쓰나? 다른 스님들처럼 그냥 기도나 하지 하는 그런 단순한 생각을 하시는 분도 계시겠지요.

물론 제가 좋아서 이 힘든 창작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절 일을 젖혀놓고 작품을 쓰지는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도 문서포교를 위한 한 장르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든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도 있으니 제가 여러분의 마음까지 간섭할 입장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실. 글이란 미리 써놓아도 문예지로 보내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좋은 작품을 보내기 위해 다시 읽어보고 또 수정해야하는 힘들고 까다로운 작업입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저녁이면 티브이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나 신문을 보는 시간은 아깝습니다. 기도나 법당 일이 없는 저녁엔 책상 앞에 앉아서 불교관련 공부를 하든지 아니면 글이라도 쓰는 그런 시간이 더 좋으니 이것도 내가 가야하는, 내게 주어진 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6년 전, 우리 절이 처음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는 정말이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습니다. 신도들이야 낮에 절을 방문하니 밤에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이런 소음은 잘 모를 것입니다. 이곳이 낮에는 산중 절간보다 더 고요한 곳이기 때문이지요. 보통 초저녁부터 시작해서 다음날 새벽까지 노래 소리가 들려오니 어지간히 강심장이 아니고는 이렇게 버틴다는 건 힘듭니다. 그것도 아주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대고 있으니....

그런데 이젠 나도 이골이 났는지 어지간히 시끄러워도 그냥 견디며 삽니다. 잠을 안자면 다음날 지장이 많으니까 억지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합니다. 우리 절이 여기서 떠나지 않는 동안은 어차피 제가 받아들여야할 일이고 마음고생만 하게 되니까 거기에 잘잘한 신경을 쓰지 않기로 하고 마음을 비워 버렸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쉽게 잠에 들지는 못해도 몇 번 뒤척이다 보면 잠이 오긴 합니다. 만약 날이 새도록 잠이 안 온다면 정말 하루도 못살지요.

아래층 유흥주점이 시끄러울 때는 책은 조금 읽어질지 몰라도 작품은 전혀 안 쓰여 집니다. 아니 못쓴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생활하는 요사채는 시끄럽지만 현관 밖, 복도 건너편의 법당은 좀 조용한 편입니다. 거기는 그렇게 많이 들리지는 않으니까요. 모든 건 마음먹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불법이 없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조용한 곳에 절을 짓고 염불을 해야만 절다운 절이라는 인식부터 버려야 합니다. 일반인들도 그렇고 불자들 중에도 그런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따지고 보면 처처가 부처님이 계신 도량이니 불법이란 고요하고 시끄러운 것을 초월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불법은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중생들의 마음에 항상 존재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눈앞에 보이는 형상을 통해 불교를 바라봐서는 안 될 것입니다. 형상이란 언젠가는 사라지는 덧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소멸성을 갖고 있다는 뜻이지요.

 

  제가 만약 이런 외형적인 것에 집착해서 혹은 그런 관점으로 불교를 이해했다면 어쩌면 저는 출가를 안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면 저는 불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스스로 마음을 깨치는 사유적인 종교라는데 매력이 끌렸기 때문입니다. 어디에 구원을 받고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의해 마음속에 있는 무명을 걷어내고 자신의 참마음을 찾아가는 종교가 불교라는 사실에 마음이 머물렀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그것은 제가 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바르게 수행의 길을 가도록 하는 지표가 되었으며 오늘날 전법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불법의 길을 가는 불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주인공)을 봐야합니다. 그것을 잘 간파하고 실천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우리가 법회 때마다 읽는 천수경의 게송偈頌중에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가장 높고 깊고 미묘한 부처님의 진리)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백천만겁이 지나도 만나기 어려워라)

라는 구절처럼 참으로 깊고 오묘한 불법을 1겁(무수한 세월)도 아닌 수백 수천의 겁이 와도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지금 만났으니 열심히 정진해야 된다는 뜻으로 마음에 생겨야 합니다.

 

  이제 곧 출가재일이 다가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땅의 중생들을 위해 생노병사의 고통에서 건지시겠다는 원력으로 당신에게 주어진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시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출가하신 날입니다. 출가란 무엇이겠습니까? 단순히 집밖으로 나온 것을 가리켜 출가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출가란 번뇌 망상을 버리기 위해 법계의 이치를 바로알고 그 참다운 진리를 찾기 위해 떠난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세속에 살고 있는 불자들이 모두 이 출가에 동참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불교에는 심출가心出家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출가하지 않고 세속에 살지만 마음은 세속적인 욕망을 떠나 있어 출가자와 같은 마음으로 사는 것을 일컫는 말이지요. 진정한 마음으로의 출가가 아니면 출가를 한사람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몸은 세속에 있어도 마음만은 늘 출가자의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소유에 집착하지 말고 콩 한쪽이라도 나눠 먹는 넉넉한 마음의 불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봄기운이 완연한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 봄꽃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추위에 움추렸던 마음일랑 털어버리시고 봄 햇살과 같은 환한 광명이 불자님들의 가정에 함께 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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