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침의 단상

봉축의 진정한 의미는 생명

최승헌 2010. 5. 16. 08:50

 

부처님오신날 봉축사 청탁원고

 

                                              

                                      봉축의 진정한 의미는 생명

 

                                                 

                                                     - 강의 생명을 생각하며 -

 

 

                                                                                                                        최승헌

 

 

 

  부처님오신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거리 곳곳에 매달려있는 봉축연등을 보며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참뜻을 새겨본다.

일상의 복덕이 지혜로 가는 지름길이며 지혜가 자라나면 곧 깨달음이 밝아진다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

시기 위해 오셨다. 그러기에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하는 우리의 마음은 더없이 경건하고 환희로운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어두운 길에 등불로서 중생이 가야할 깨달음의 길을 인도해 주셨지만 그러나 미혹에 쌓인 마음으로는 이 깨

달음을 찾아 갈 수가 없다. 불교의 근본목적이 깨달음에 있지만 마음 밖에서 자기를 보는 자는 자신의 본래 모습을 보지 못

하기 때문이다. 깨달음이 무엇인가. 바로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원래 자기의 참모습을 찾는 일이다. 그래서 인간이 갖고 있

는 본래의 성품을 찾아 깨달음을 이루는 일은 불교의 화두인 것이다.

 

  육조 혜능대사는 본래 성품을 보는 것이 부처를 이룬다고 했다. 본래의 성품이란 밝음과 어둠이 없고 안과 밖, 그리고 생

도 멸滅도 없는 청정한 그 자리, 바로 우리가 찾아야할 본성의 자리라는 뜻이다. 인간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규정

지었지만 만물의 영장이란 지혜가 있을 때 가능하다. 그래서 지혜도 없이 우매한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하진 않는다.

하루에도 수없이 변하는 인간의 마음은 늘 자신을 충족시켜줄 욕망을 찾아 헤매고 있으니 자신의 참 성품인 본성을 외면한

다면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결국 본성을 찾는 일이란 지혜를 통해서만 완성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혜는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마음의 작용이며 어

리석음을 멀리하여 보리菩提를 성취하는 힘이니 무엇이든지 나를 기준으로 해서 이기심을 앞세우기보다는 남을 더 배려하

고 포용할 때 가능하다.

 

  서로 생각이 다르면 설득과 포용보다 비난과 반대가 먼저인 우리 사회에서 요즘 가장 큰 이슈인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한

각계각층의 견해 차이가 심해 찬반의 목소리가 높다. 날이 갈수록 논쟁은 뜨겁고 해법은 나오지 않는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만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면 아까운 시간만 흐를 뿐이다.

정부의 큰 사업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면 시행을 안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4대강 사업의 명분이 나라를 위

고 국민을 위한다지만 그게 어디 대다수 국민들의 호응을 얻기나 했는가. 혹은 자연환경을 제대로 생각하기나 했는가.

군데군데 파헤쳐진 강변의 흙과 구덩이를 보며 자연환경이 심하게 훼손되었다는 사실 외엔 가슴에 와 닿는게 없는 것 같다.

생태계의 파괴는 말할 것도 없고 자연스럽게 흐르던 아름다운 강은 낯선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4대강 사업이란 한마디로 말해 한강에서 영산강까지 우리나라 강줄기를 따라가면서 22조2000억원(실제로는 더 든다고 봐

야한다)이라는 막대한 사업비가 투입되어 강을 보수하고 새롭게 리모델링하자는 것인데 이게 왜 이해가 안 될까. 물론 정부

에서는 이 사업을 통해 물부족해소론과 홍수예방론, 그리고 수질개선론이니 지역경제발전론이니 하는 거창한 사업안을 내

놓았지만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자연은 자연 속에 있을 때 아름답다. 아름다운 강이 있기에 우리나라를 일러 금수강산이라 하건만 오랜 세월, 그저 제 갈

길 따라 유유히 흘러가는 강을 왜 가만 두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간다. 사대강 사업으로 인해 강이 입을 피해를 생각하면 안

타깝기 그지없다. 강의 모래톱은 사라지고 강변의 구조물이 콘크리트 호안블록으로 바뀌어서 하천의 형태가 심하게 훼손된

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왜 4대강 사업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가다가는 새들도 날아오지 않는, 시멘트 냄새

나 나는 삭막한 인공강이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 된다.

그렇잖아도 지금 세계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많은 재난을 당하고 있다. 쓰나미가 지나간지 몇 년 되지도 않아서 일어난 중국

쓰찬성, 아이티, 인도네시아, 칠레의 지진에다 아이슬란드 화산 폭팔까지 재난이 줄을 잇는 것 같아서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재앙들은 사람들이 자연을 지키지 못하고 훼손하면서 생긴 결과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것은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며 후세에 물려줄 값진 유산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자연에 대한

소중함과 겸허함을 배우지 못하고 단지 조금 편리하게 살겠다는 마음에서 자연을 지배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큰 화를 입을 수

도 있다. 이렇게 마구 파헤치고 훼손하다보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뻔하지 않겠는가.

다 시 말하지만 개발이라는 논리로 자연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맑고 푸른 강을 바라보며 자연에서 얻어지는 몸과

마음의 정신적 체험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어리석음으로 인해 훗날 후회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을 하고 싶다. 살아 숨쉬는 것은 모두 생명이다. 따지고 보면 자연도 생명이 아니던가. 강, 바람, 나무, 그리고 풀 한 포기까

지 생명이 아닌 것은 없다. 그것들은 숨을 쉬기에 아파 할 줄도 안다. 개발에 밀려 점점 망가지는 우리의 산천을 보며 쓰리고

아픈 마음이 드는게 어찌 나 혼자만의 심정일까.

 

  속담에 ‘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는 말이 있다. 정부나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앞장서서 소신껏 말하고

그 말에 책임 있는 행동할 때 국민들이 스스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실현이 되는 것이지 아무리 거창한 사업이나 정책이라

해도 국민의 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고 혼자만 목소리를 높여봤자 아무도 귀를 기우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

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을 누릴 권리와 자유가 있다. 또한 자기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수도 있고...

국민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잘 찾아내어서 실현시켜 주는 것, 그것이 제대로 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밀어 붙이

는 식은 지난 시절 얘기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든든한 자부심이 느껴지도록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

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요즘같이 대립과 갈등으로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는 원효대사가 주장했던 화쟁사상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하다.

부처님께서는 긍정과 부정의 극단을 떠나 자유로운 삶을 사는 길인 중도를 가르치셨건만 우리는 서로의 견해 차이로 인한

대립으로 조용할 날이 없다. 서로 화합 한다는 것은 올바른 의견과 생각에 동참할 때 가능한 것이다.

이치적으로도 맞지않는 일을 힘으로 혹은 권력으로만 해결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보다 깊이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

의 얘기에 귀를 열어 줄줄 아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유마경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모든 보살에 있어서

지혜바라밀은 그 어미이고

능한 방편은 그 아비이니

이 둘을 부모삼아 보살은 태어나네.

 

  보살의 일반적인 정의는 대중의 구제를 위해서 노력하는 구도자나 지혜를 가진 자를 말하지만 깨달음을 얻고자하는 모든

사람을 보살이라고도 한다. 깨달음으로 가는 진정한 길이 어디에 있는지 불기 2554년 부처님오신날의 봉축 의미를 통해

한번 생각해 보자. 어렵고 힘든 현실이지만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신 참뜻을 헤아려 보며 우리에게 큰 지혜로서 현명한 길을

제시해주시기를 발원하며 봉축사에 대신한다.

 

2010년 5월17일 시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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