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침의 단상

포교원 일지

최승헌 2010. 4. 30. 10:34

 

                                                                                                               우리 절의 모든 업무를 보는 종무실 전경

 

 

 

                      

                                  포교원 일지

 

 

                                                                       최승헌

 

 

 

  엊그제 보름법회 끝나고 조계종 총무원에 서류 제출하러 가는 날, 비가 내리는데다 길도 막혀

운전하고 가느라 애를 먹었다.

다른 날 같으면 까짓 운전쯤이야 아무 일도 아닌데 그날은 정말이지 시흥을 출발할 때부터 몸

상태가 안 좋았기 때문이다. 기침, 콧물 하나 없어도 감기는 오는지 온 몸이 춥고 뼈마디가 쑤

시는 게 그냥 들어 누웠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오후 3시, 아직 퇴근시간이 되려면 두어

시간 정도는 더 있어야 하는데 서울 가는 길은 왜 그리도 막히는지 모르겠다.

특히 상습지체구간인 개봉동, 오류동, 구로, 영등포, 마포를 느리게 운전하며 지나가는데 온몸

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만 같고 점점 몸이 안 좋다. 거기다 입술도 약간 부어오르고...

 

  평소 우리 시골 절이 있는 청도를 당일로 운전하고 올라와도 끄덕없었는데 나이 탓인가?

내 나이 또래에 비해서도 그렇고 누구보다 건강은 자신했는데 말이다. 그러니 건강은 자만하지

말라 했던 모양이다. 문득 보왕삼매론의 첫 구절이 떠오른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병이 없으면 자신이 잘난 줄 알고 자만에 빠지기 쉬우니 병을 통해 공손하고 겸허한 마음과 하심

하는 마음을 배우라는 것이리라. 조계사를 눈앞에 두고 광화문 앞도 도로가 많이 막힌다.

시흥을 출발해서 2시간을 넘게 운전했는데도 아직도 내차는 광화문 근처에 있다. 다른 날 같으면

한 시간 남짓 가는 시간이 오늘은 무색할 지경이다. 왜 이렇게 막힐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일이

해군 천안함 용사 영결식이 있는 날이다.

어제 오늘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천안함 46 용사 합동분향소에 조국을 위해 아깝게 숨진

젊은 용사들의 희생 넋을 기리는 조문객들의 행렬 때문에 서울시내 도로가 막혔다는걸 뒤늦게 기

억해내고는 미안한 마음에 나도 차안에서나마 잠시 눈을 감고 젊은 영혼들의 왕생극락을 빌었다.

그들의 꿈과 열정이 깃든 해군정신이 결코 헛되지 않기를 기원하며...

 

  서류를 제출하고 돌아오는 길은 퇴근시간이라 더 막힌다. 뼈마디가 쑤셔오고 눈가도 벌겋게 충혈

된 것 같다. 절에서 점심으로 먹은 카레라이스가 자꾸만 불편하게 올라온다. 카레라이스는 원래 내

가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몸이 안 좋은 상태가 되니 그 냄새마저 싫어진다.

빨리 절에 가서 눕고 싶지만 오늘저녁은 합창단 연습이 있는 날이니 합창단원들이 다 갈 때까지는

나도 편히 지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왕복 4시간을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힘없이 합창단실(여기

를 지나야 내 방이 있으니...) 문을 열들어서니 한마디씩 한다.

 

‘스님, 몸이 안 좋으세요?’

‘입술은 왜 그래요?’

 

  며칠 연거푸 약을 먹었더니 오늘은 몸이 좀 괜찮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나은건 아닌 것 같다.

어제 새벽(2시40분)엔 몸이 안 좋아서 자다 일어나 빈속에 약을 먹었더니 어제는 종일 속까지 쓰렸다.

아침 일찍 절에 기도하러 들린 법성행 불자에게 어제 안도정 불자님이(마침 옥상에 있는 장 손

다고 오셨다) 끓여 놓고 간 흰죽을 데워 달래서 먹고 약을 먹었더니 속이 편안하다.

그래도 법성행이 기도하러 매일 아침마다 절에 들리니 아침을 잘 안먹는 내가 그 바람에 토마토

쥬스라도 한잔씩 얻어 마시니 고맙기만 하다.

 

  오늘, 창밖을 바라보니 봄도 꽤 깊었다. 이러다 갑자기 여름이 오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제 오늘 바람이 세게 불었는데 오늘은 잠잠한 것 같다. 거리에 걸려있는 우리 절 봉축 연등이

이번 바람에 많이 떨어져서 다시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요즘은 날씨가 신경 쓰인다.

좋은 계절이다. 살고 있다는게 싫지만은 않은...

 

2010 . 4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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