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바다속에 시가 보이는 날

최승헌 2018. 9. 11. 21:46






 

 

바다 속에 시가 보이는 날

  



며칠 전 고향 부산을 다녀왔다.

남부지방에 많은 비가 내릴 것 이라는 간밤의 뉴스를 보고도 오래전 약속이 된 거라 안 갈수가 없어서

새벽 일찍 일어나 출발했더니 가는 도중 여러 번의 빗줄기를 만났다.

비를 핑계로 다음으로 미룰 수도 있는 일이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많이 가고 싶었다.

누군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 그립지 않은 이 있을까만 나는 고향에 대한 향수가 좀 특별하다.

스물을 막 넘어선 풋풋한 청춘에 부모형제가 있는 고향을 떠나 오랜 세월 산으로 저자거리로 지금까지

타향에만 머물고 있으니 왜 고향이 그립지 않으랴.

 

한참을 운전해 내가 도착한 곳은 부산 기장 앞바다가 보이는 산비탈 조용한 콘도...

해동용궁사가 바로 옆에 있는 푸른 바다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저녁이면 만날 도반스님을 기다리며 바닷길을 산책하는 동안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이 나이가 되도록 오로지 시와 구도의 길만 걸었건만 전혀 예기치 못한 일로 건강을 잃고 나니

내 삶이 참 무의미하게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열정에 빠져 정신을 쏟던 일이 언제인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다시 나를 추스려 본다. 정신없이 바쁜 번잡한 삶이 어찌 한가로움이 주는 기쁨을 알겠는가

하고 스스로 위로 해본다.

어쩌면 나는 지금 그동안 분주했던 마음을 다 내려놓고 귀한 휴식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를 안 쓴지도 몇 해가 흘렀다.

주위에서 왜 시를 쓰지 않느냐고 이야기 할 때마다 묵묵부답, 나는 아무 변명도 못한다.

시를 잊은 것도 아니고 외면한 것도 아닌데 솔직히 자신감이 좀 떨어진 것 같다.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시는 묘한 존재다. 그저 바라만 봐도 가슴이 뛰는 존재이니까.

그래서 시는 그리움이고 설렘이 아닌가.

언젠가는 나도 다시 그 아련한 떨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샘을 간직하지 못한 산은 그저 돌덩어리, 흙무더기에 불과하다는 말을 떠올리며...

2018.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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