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서른의 강/ 김희우

최승헌 2017. 10. 28. 11:07



서른의 강

 

김희우

 


살아갈 날들에 대해 안개주의보가 내려진 서른의 강가에는
마른 갈대들이 의문부호처럼 쓰러져 있었고
살아온 날들만큼 가파른 연신내 박석고개 위 남루한 병원
핏기 없는 병상에
지친 내 서른의 강이 누워 있었다

--니 애비가치 누워버리면 안 된다
니 새끼덜 불쌍치 않게
심들어도 사는 게 다 금 캐는 일이니라.

성급하게 기울었던 아버지의
강물에 머리를 적시며 어머니는
자꾸 어린 것들의 머리를 쓸어내렸고

살아온 날들 내내
가난한 아버지와는 애써 무관하려 했던
내 눈길을 흔들며, 플라타너스
잎새 마른 가지를 흔들며
묏새 몇 마리 까닭없던 유년의
돌팔매처럼 빈 하늘로 뿌려지고 있었다

어디까지 흘러야 푸른 잎을 흔들며
다시 설 수 있을까
언젠가는 식구들을 데리고 넘어가야 할 고개
저편 새로 들어선 아파트 마을 단풍잎 같은
유리창 불빛은 한 잎 한 잎 지고 있는데
돛대 부러진 식구들의 배를 싣고
가뭇없이 흘러가던
서른의 강


내 젊은날, 한동네에 살면서 자주 만나 시를 이야기 하며

청춘의 아픔을 공유하던 아끼는 후배 시인의 시다.

묘사와 진술이 융합하여 조화를 이루는 완성도 높은 시를 쓰는

신춘문예 출신 시인이지만 문단에는 거의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예전엔 시를 왕성하게 썼지만 지금은 생업이 먼저라서 업무 틈틈히 쓴다.

이 시는 삼십대에 쓴 시인것 같다.

그의 어깨에 짊어진 고달픈 청춘의 무게가 느껴진다. 

종류는 달라도 우리 모두 삼십대에는 이런 중압감이 있었겠지.

고통과 슬픔과 사랑이...

이 가을이 가기전, 만나 커피라도 한잔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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