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혜화역 4번 출구/이상국

최승헌 2011. 2. 2. 09:13

 

 

 

혜화역 4번 출구/이상국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그 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그냥 고향 여름 밤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닥이 편하다

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大地)의 소작(小作)이다

내 조상은 수백 년이나 소를 길렀는데

그 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 보다는 부리는 걸 배운다

그 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우는 저를 업고

별하늘 아래 불러준 노래나

내가 심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알겠는가

그래도 어떤 날은 서울에 눈이 온다고 문자 메시지가 온다

그러면 그거 다 애비가 만들어 보낸 거니 그리 알라고 한다

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나는 그전에 서울 가면 인사동 여관에서 잤다

그러나 지금은 딸애의 원룸에 가 잔다

물론 거저는 아니다 자발적으로

아침에 숙박비 얼마를 낸다

그것은 나의 마지막 농사다

그리고 헤어지는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그 애는 나를 안아준다 아빠 잘 가

 

 

 

예전 우리 아버지도 서울에 오시면 청진동 여관에서 주무셨다.

내가 서울에서 공부하느라 자취방이 있었지만 거긴 너무 좁아서 모실수가 없었다.

청진동에서 묵으시는 이유는 주변에 국밥집이 많아서 아침식사하시기 편해서라고 하셨다.

그때 시골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재직하고 계셨는데 서울에서 전국중고등학교

교장회의가 있을때면 올라오셨던 것 같다.

물론 1년에 한번 정도였지만...

서울에 오신 아버지 전화를 받고 아침부터 청진동 여관에 가면 여관집 주인이

나와 아버지를 번갈아 쳐다보기도 했다. 아버진 연세에 비해 젊으셨으니까...

그래도 형제들중 내가 아버지를 제일 많이 닮아서 아침부터 여관에 가도 그리 불편하진 않았지만

아버지만 아니면 가고 싶지 않았다.

 

출가 후 7년이 지나서야 만났던 아버지...

서울역 앞에서의 짧은 만남 뒤 아버지는 현금 10만원과(당시엔 거금이였음) 손목에 차고 계시던

시계를 내게 풀어주시며 ' 언제든 집에 오고싶을 때 와. 항상 대문을 열어 놓을게'라고 말씀 하셨다.

하지만 산사에서의 생활이 고생스러워도 나는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남양주 견성암에 있을 때의 일이고 나는 그때 이십대였다.

매월 아버지 월급날이면 건강 잘 돌보고 열심히 공부하라며 정성스럽게 쓰신 편지와 함께 

용돈을 동봉해 주실 정도로(공부하는 4년 동안 단 한번도 빠진적없음)  

자식 사랑이 무척이나 깊었던 우리 아버지도 이젠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새삼 인생무상이 느껴진다.

 

이상국 시인의 시 혜화역 4번 출구를 읽다보니 아버지와 딸의 애틋한 정이 느껴진다.

딸의 원룸에서 하룻밤 신세를 져도 행여 자식에게 방해가 될까봐 조심조심...

학업이 끝나면 고향에 내려오지 않고 서울에서 그냥 눌러앉을 것 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그게 자식농사라 여기는 아버지의 마음...

딸을 만나고 헤어지는 혜화역 4번 출구가 부녀지간의 아름다운 사랑이 묻어있다.

세상 아버지들은 고단한 노동의 댓가로 이렇게 우리를 가르치고 키우며 행복해 했을 것같다.

 

초하시인의 블로그를 방문했다가 읽은 이 시가 좋아서 옮겨오려고 했으나 복사가 안되어서 다른 곳에서 갖고왔다.

공감이 가는 좋은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서 내겐 그 느낌이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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