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침의 단상

정법의 길은 멀다/ 최승헌

최승헌 2011. 2. 1. 12:51

 

 

                         

                           정법의 길은 멀다

 

 

                                                                        최승헌

 

 

 

 

  엊그제 도반스님들이 시흥으로 왔다.

이번에 내가 인도성지순례 가는 바람에 모임에 불참했으니 그날 있은 회의 사항도 듣고 또 서로

오랜만에 만났으니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즐겁게 얘기를 나누다보니 자연히 화제가 정초행사 건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절은 정월달이 무척 바쁜 달이다. 그런데 올해는 유독 절집의 중요행사가

한꺼번에 몰려 있다. 이번 설 다음날이 입춘기도 날이고 그 다음날(음력 1월3일)은 정초 신중7일

기도날이여서 그 어느 해 보다 바쁘게 생긴 것이다.

명절 때이니 신도들은 대부분 가족들과 설 연휴를 보내거나 지방으로 설 쉬러 갔다가 아직 올라오

지도 않았을 테니 입춘법회에 나올 불자들이 없을 거라며 다들 걱정을 했다.

물론 우리절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도반스님들은 함께 사는 대중들이라도 있지 나는 혼자 살고 있으니

봉사해줄 불자들이 없어서 좀 걱정이긴 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날짜가 그렇게 되어있는 것을...

 

  낮에 우리 절 부근에 산다는 어느 불자의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를 들으니 아마 40대 초중반 정도는 된 것 같다. 자기는 시흥의 어느 절을(내게 절 이름을 밝혔으나 여기서는 생략함)다니고 있는데 멀어서 가까운 우리절로

나오겠다며 올해 남편이 삼재인데 고향에 설을 쉬러가야 하기 때문에 입춘에 못나온다고 한다.

대신 그날 절에 갖고 가야할게 무언지 그걸 준비해서 지금 우리 절에 오겠노라고 한다. 내가 아무것도 준비

할게 없다고 하자 자기가 다닌 00사는 입춘 날 속옷과 공양을 갖고 오란다고 했다.

그런 행위는 잘못 된거니까 준비 안해도 된다고 차근차근 설명을 했으나 이해가 안 되는지 자기가 다녔던 절도

조계종이고 거기(우리 절)도 조계종인데 왜 다른 절과 다르냐고 자꾸만 묻는다. 내가 몇 번이나 설명을 해도

이해가 잘 안 되는 모양 이였다.

 

  아무튼 전화 끝에 우리 절이 자기 집에서 가까운 곳이니 10분 안에 오겠다고 했지만 그 불자는 몇 시간이

지나도록 끝내 오지 않았다. 입춘 날 불단에 부적도 속옷도 안올리는 우리 절이 마음에 안든 것이다.

그리 늙지도 않은 사람이 왜 생각은 그렇게 고루하기 짝이 없는지 모르겠다. 이런 고정관념을 고쳐주지

 못한 사찰에 책임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언제부터 이런 풍습이 생겼을까?

부처님의 가르침 어디에 이런 미신적 행위가 정당화되어 있던가.

얼마나 많은 절에서 정월달에 이런 식의 사사로운 민간풍습을 당연시 했기에 그 불자가 그렇게 말하는가

싶다. 주위에 보면 부처님을 팔아 금전적 이득을 보려는 가짜 절이 꽤 많다. 우리와 똑같이 절 꼭대기에

만자를 올리고 불상을 모시고 승복을 입고 있다. 그러면서 온갖 미신적 행위를 일삼으며 불교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있으니 걱정이다. 아마 일반사람들의 눈에는 모두 똑같은 스님들로 보일 것이다.

 

  사찰에 처음 갈 때는 첫발이 참 중요하다.

불교가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처음으로 사찰에 찾아갈 때 그 사찰이 어떤 곳인가에 따라 불

자들의 생각도 달라진다. 처음의 습관이 중요한 것처럼 어떤 것을 배우고 아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기 때문이다. 정법을 포교하는 길은 멀다.

중생의 눈이 어둡고 마음이 어리석어 바른 진리를 보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현실이다.

이 사회에 올바른 불법을 전하고 불교의 미래를 고민해야하는 책임은 무엇보다 스님들에게 있다.

더구나 처음으로 절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불교의 바른 가르침을 심는 일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다.

 

  불자들에게 정신적 지주로 서있는 스님들은 설령 불자들이 원한다 해도 절대 비불교적인 행위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남을 탓할 것도 없이 우선 나부터 자신을 돌아보며 정법을 실천하여 열심히 수행정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게으름을 멀리하고 잠을 줄이며 부지런해야 하는 것, 그것이 수행자가 아니던가. 항상 부처님 은혜에

감사하며 이 험난한 포교의 여정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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