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헌 시 비평

강에 가면 어둠이 없다 시 비평

최승헌 2008. 5. 8. 23:57

 

 

 시 비평

 

                                       

                                   강에 가면 어둠이 없다

 

                                                                             최승헌

 

                             

 어둠이 등짝을 데우는 시간, 햇살에 그을린 계절을 비질하며 강으로 간다 날카로운 물살위에 떠 있는 하루살이 떼가 임종을 맞이하여 저렇게 버둥거리는데 누가 여기 와서 국밥 같은 슬픔을 말아 먹으며 황홀하다 했는지 알 수 없다 그저 도도하게 제 속살 속으로 흘러갈 줄만 알았지 남이야 강물 속 깊이 상처를 구겨 넣던 말건 곁눈질 한 번 주지 않는 오만한 강의 비위를 건드려 본적이 있는가 강에 오면 너무 많이 노출되어 진다 어둠의 문법에서 배양된 언어가 서서히 말라가는 것이거나 혹은 노인의 몸처럼 쓸쓸하게 저물어 가는 것들에 대해서 떠들고 돌아간 날이면 강은 어둠의 허리를 잘라먹으며 저마다 던지고 간 상처를 삼키고 있다.

                                     

                                              - 최승헌, '강에 가면 어둠이 없다' (현대시학 1월호) 전문

 

 

 시적대상이 감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인의 노력은 극진하다. 사물이 아무리 제 본마음을 감추려고 해도 시인의 겹눈은 그것을 예리하게 파헤치려하고 들추어내려고 한다. 그러나 시적대상이 얌전하게 그것을 허락할 리 없다. 그렇다고 물러날 시인 또한 아니다.

치열한 시인이라면, 치열한 시적정신을 갖추었다면 시적대상이 감춘 미세한 그 무엇이라 할지라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시인 각고의 노력에 의해서 시적대상은 새로움으로 재탄생되고 독자는 거기에서 새로운 감동과 감흥을 부여받는 것이다. 그러기에 시인은 창조자인 셈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 정신적 '소화불량'의 상태를 거쳐야 하고 쉽게 쾌변에 이르지 못하는 정서적 '변비'의 극심한 불안의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이다.

'강'이 담은 상징은 많다. 그 이유는 고여 있다는 것과 함께 흘러간다는 것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속성 때문이다. 다양한 세계를 담는다고 해야 할까. 고여 있다는 시간적 상징과 흘러간다는 공간적 상징의 비유라 하면 합당할 것이다. 그리고 물이라는 통상의 시어에서 오는 원형적 상징 또한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흘러간다는 시간적 상징은 죽음과 동시에 다시 태어남을 의미하며 한 줄기가 여러 줄기로 갈라지기도 하고 다시 한 줄기로 합쳐져 한 곳에 모이는 시간적 연속성으로 인하여 인간의 운명을 담기도 한다. 또한 고여 있다는 공간적 상징은 모성으로 품어준다는 원형의 상징과 통함이 있다.

강이라는 시적대상에 적극 개입된 시적자아가 돋보인다. '강에 가면 어둠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강을 통한 아픔의 삭힘과 운명의 질서를 담고 있지는 않은지.

 

                                 시론, 시적인 삶, 시적인 세상

                                                                  최선옥 (문예지 월평 및 문화교양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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