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헌 시 비평

깜깜한 불, 그리고 착각이 짚은 바닥 / 문인수

최승헌 2012. 11. 3. 09:10

 

             

 

 최승헌

 

자신을 온전히 태울 수 있다는 건

세상을 대충 살겠다는 마음이 아니다

한세상에서 한세상으로 건너가는 일이

밤새 꽃이 피고 지는 일이 아니기에

사랑은 그 절정에서 적멸에 이르렀고

슬픔은 관절마디마다 몸을 풀었다

갈라진 뼈마디 속에서

다시 숨결을 고를 때까지

아무 것도 성한 것이 없다면

소리조차 이를 악다물었을 거다

상처가 깊으면 속이 보인다지만

오장육부까지 시커먼 속이

어디 그리 만만하게 열리든가

캄캄한 어둠속에서 만날 수 있는 건

자신의 그림자밖에 없다는 것을

활활 타오르는 불속 깊숙이

제 몸을 던져 본 자는 알 것이다

온몸으로 교신하는 생이 어둠을 따라

마지막 입관자리를 찾아 갔을 뿐

처음부터 아무도 불을 켜지 않았다는 것을

 

 현대시학 2009년 7월호

 

 

 

깜깜한 불, 그리고 착각이 짚은 바닥

 

이미 살아낸, 이미 깊이 고뇌한바 있는 삶의 질곡들이 시인의 '오장육부'와, 그 '바닥'의 '적멸' 속에

이제 고요히 가라앉아 한 풍경을 이루고 있다. 그러니까, 시인은 자신의 선험적 내면을 통해 능히,

그리고 널리, 또한 깊이, 인생과 세상을 살필 수 있고, 또한 그것을 바깥(독자)에다 조근조근, 손에

쥐어주듯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의 깨달음을 높이 내걸거나, 누군가를 가르치려들지 않는다. 그저 어눌한 척,

 '숯'의 진실과 '착각(바닥)'의 허상을 독자들에 "여기, 이런 게 있다."라고 보여줄 뿐이다.

 

 문인수 시인

 

 

 

 

 

 

 

 

 

 

 

 

37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