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껌 / 김기택

최승헌 2010. 2. 6. 09:30

 

 

껌 / 김기택

 

 

누군가 씹다 버린 껌.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껌.
이미 찍힌 이빨 자국 위에
다시 찍히고 찍히고 무수히 찍힌 이빨 자국들을
하나도 버리거나 지우지 않고
작은 몸속에 겹겹이 구겨 넣어
작고 동그란 덩어리로 뭉쳐놓은 껌.
그 많은 이빨 자국 속에서
지금은 고요히 화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껌.
고기를 찢고 열매를 부수던 힘이
아무리 짓이기고 짓이겨도
다 짓이겨지지 않고

조금도 찢어지거나 부서지지도 않은 껌.
살처럼 부드러운 촉감으로
고기처럼 쫄깃한 질감으로
이빨 밑에서 발버둥치는 팔다리 같은 물렁물렁한 탄력으로
이빨들이 잊고 있던 먼 살육의 기억을 깨워
그 피와 살과 비린내와 함께 놀던 껌.
지구의 일생 동안 이빨에 각인된 살의와 적의를
제 한 몸에 고스란히 받고 있던 껌
마음껏 뭉개고 갈고 짓누르다
이빨이 먼저 지쳐
마지 못해 놓아준 껌.

 

 

 

 

 

 

 

 약력

 1957년 경기도 안양 출생

 중앙대 영문과 졸업

 경희대학교대학원 국문과 박사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가뭄」과 「꼽추」당선

 

 1995년 김수영문학상

 2001년 현대문학상

 2004년 이수문학상,

            미당문학상

 2006년 지훈상

 2009년 상화시인상

            경희문학상

 

 

  저서

《시와 몸과 그림 -이상과 서정주의 몸시 그리고 그림》 동시집《방귀》

그림책《꼬부랑 꼬부랑 할머니》

 

시집

《태아의 잠》《바늘구멍 속의 폭풍》

《소》《껌》

 

번역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고양이 폭풍》《내가 가장 슬플 때》

《로켓을 타고 간 토끼》《숲 속에서》

《행복한 한스》《똑똑한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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