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슬픔의 맛 / 손현숙

최승헌 2010. 1. 19. 03:23

 

 

 

 

 

 

          슬픔의 맛 / 손현숙

 

 

 

안다는 것은 본 것을 기억하는 것이며,

본다는 것은 기억하지 않고도 아는 것이다.

- 내 이름은 빨강 중에서 -

 

  오스만제국의 세밀 화가들은 신이 보았던 그대로 세상을 그리려고 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50년 동안 그림만 그렸기 때문에 대부분은 장님이 되고

말았다. 반복해서 그리던 세상을 손으로 외워서야 신의 기억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한다.

 

  언제부터 내 눈도 멀어 너를 보지 않고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나라고 하는 너’는 나를 끌고 일곱 하늘과

일곱 땅을 통과한다. 내 발과 네 발이 겹쳐 나는 언제나 혼자다. 보지 않고도

안다는 것,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슬픔의 맛. 너의 시간은 나의 시간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 생각 속에서만 환생하는 꽃을 보며 내 몸에 벨벳 같은 어둠이

찾아 든다. 너 보다 더 너 같았던 나, 이제야 너를 환히 본다. 그러나 너는

나를 기억하지 말기를. 어둠 속 반복해서 그렸던, 너는 나의 영혼.

 

 

 

 

 

 

 손현숙시인 약력


서울에서 출생

신구대학 사진과와 한국예술 신학대학 문창과를 졸업.
1999년 '현대시학'에 시「꽃들은 죽으려고 피어난다」외 4편으로 등단.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상' 수상.

시집 ' 너를 훔친다 '(문학사상사)

陰畵로 풀어 쓰는 시 ' 시인박물관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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