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공연 감상글

세상에서 가장 슬픈 기타를 치는 게리무어

최승헌 2010. 5. 8. 23:23

 

                                                                                                                                     저 출입구로 들어가면 된다.

 

                                                                  인터파크에서 예매한 표도 미리 바꿨다. 일찍 도착하니 한산해서 좋은점도 많다.

 

                  공연 30분전 관객들의 모습...내가 앉은 자리가 비교적 무대가 가까워서 사진 찍기는 좋았다. 하지만 공연전에만 가능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관객들이 점점 모여들고 있다.

 

                                                   드디어 공연 시작...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카메라를 발광금지로 해서 얼른 한장 찍었다.

 

                                                                                                               전률이 흐를정도로 멋진 연주를 하는 게리무어          

 

 

                                                                열창하는 게리무어...이 사진은 퍼온 사진이다.

                                                                       ( 복사해도 되는 합법적인 사진) 

 

 

 

 

게리무어 내한공연

 

 

 

                                             세상에서 가장 슬픈 기타를 치는 게리무어

 

 

 

                                                                                                                      최승헌

 

 

 

 

 

  게리무어, 1952년 아일랜드 태생으로 영국에서 활동한 명기타리스트이며 가수인 그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기타를 연주하는 사나이다. 어떻게 기타를 연주 하면 그런 별명이 붙을까?

지난 금요일 저녁, 하드록 기타리스트의 명예를 마다하고 블루스 기타의 거장으로 우뚝 선 신비에 쌓인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게리무어의 내한공연을 보기위해 도반인 황선생과 함께 올림픽 공원 펜싱경기장으로 향했다. 나는 가끔이라도 연극이나 음악회, 그리고 뮤지컬 같은 문화공연을 즐겨 보는데 비해 황선생은 그동안 학위논문 준비에 강의에 공부만 하느라고 이런 공연하나 제대로 못 본 처지여서 오늘은 미안한 마음에 내가 같이 가자고해서 온 것이다.

 

내가 감기 몸살로 몸은 좀 안 좋았지만 혹시 퇴근길에 걸려 차가 막힐까봐 일찌감치 서둘러 갔더니 오후 5시 조금 넘어 도착했다. 시간이 너무 이르지 않을까 했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연장 앞에 와 있다. 그만큼 게리무어의 첫 내한 공연에 국내 펜들의 관심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공연은 밤 8시, 게리무어의 공연을 보기위해 모인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만이 아니었다. 외국인들도 눈에 많이 띄었고 젊은 학생들도 보였다.

옷을 얇게 입고 왔더니 몸이 좀 안 좋다. 거기다 점심을 안 먹고 갔으니 배도 고팠지만 입맛이 없어서 편의점에서 황선생만 컵 우동을 먹고 나는 그냥 앉아 있었다. 혼자 먹기가 미안했는지 내게 음료수라도 마시라고 권했지만 별로 먹고 싶지가 않았다.

몸이 어제 같았으면 이 공연도 못 올 뻔 했는데 다행이 오늘은 조금 나은 것 같아서 왔더니 넓은 공원 안이라 그런지 춥기까지 한다. 그래도 예약한 표니까 꼭 보고 가야 할 것 같았다.

 

 

  이번에 게리무어의 내한공연을 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오른손과 왼손을 자유자재로 쓰는 그의 뛰어난 기타연주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애절한 영혼의 노래 소리를 직접 한번 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직 한창 개구쟁이였을 10세 때 독학으로 기타를 배워 13세 때 마스트 했다니 정말 놀라운 솜씨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활동으로 현란한 테크닉과 대단한 음악성 하나로 세계적인 거장이 된 배경에는 연주와 노래에 대한 불굴의 투혼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아무리 음악적 재능이 있다 해도 피나는 노력 없이 정상의 자리에 설수는 없을 것 같다.

 

평소 게리무어의 음악을 좋아해서 내가 그의 연주와 노래가 있는 CD를 몇 장 갖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 첫 내한공연은 보고 싶었다. 그가 어렵게 우리나라에 발걸음을 했으니 이 귀한 공연을 내 눈과 귀와 가슴으로 제대로 감상해보고 싶은 마음에 인터파크를 통해 일찌감치 예매를 했기에 가능했다. 공연장 앞을 서성이며 줄지어 서있는 입장객들에게 다가가서 표를 팔아라며 속삭이는 암표상들을 보며 인터넷 예약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냥 왔으면 표를 못 샀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게리무어의 공연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충만한 밤이다.

 

 

  8시가 조금 넘자 기타, 드럼, 베이스, 키보드의 나이 지긋한 연주단원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기타를 손에 든 게리무어가 무대로 나타났다. 와~하는 함성과 함께 4천명이나 모인 실내가 우레(우레라고하니 이상하다. 우리는 우뢰라고 배웠는데 1989년 표준어규정에 의해 우레로 전환된 걸로 알고 있다)와 같은 박수소리와 함성으로 소리를 높였다. 관객들은 대부분 3,4,5십대들이였는데 그들도 아직은 젊은 열정이 살아있는 것 같다.

게리무어는 그다지 크지 않은 키에(서양인치고는 작은 키) 약간 통통해 보이는 장발의 중년 신사다. 청바지에 아무렇게나 걸친 와이셔츠가 그의 소탈한 인품을 잘 드러내는 것 같다. 더구나 내가 좋게 본 것은 게리무어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이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 짧은 공연에도 몇 번씩이나 화려한 옷으로 바꿔 입고 나오는 우리나라 연예인들에 비하면 참 수수하고 검소한 모습이다.

 

먼저 귀에 익은 ‘ 오 프리티 우먼과 ’ 배드 포 유 베이비 ‘로 무대를 화려하고 강렬하게 다루었다. 관중은 흥에 겨워 손뼉을 치고 어깨를 들썩인다. 누가 저 열정적이고 애절한 음색에 신들린듯 기타를 치고 있는 사나이를 59세로 보겠는가?

사십대만 되어도 다니는 직장에서 언제 밥줄이 끊어질지 모르는 우리네 현실에서 아직 식지 않는 인기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를 보며 관객들은 부러운 마음과 함께 선망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반짝하며 사라지는 눈요깃감의 댄스가수도 아니고 미모나 자랑하는 어설픈 립싱크 가수도 아니다. 오로지 실력으로 전 세계 음악애호가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 뮤지션이기에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를 사랑하는 펜들이 많은 것이다.

넓은 경기장 안을 가득 매운 객석의 열기는 더해 가고 게리무어는 혼신의 힘을 다해 기타를 치며 계속 노래를 부른다. 요란한 핑거링으로 ‘ 다운 더 라인 ’을 부르며 블루스의 진가를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객석의 혼을 쏙 빼앗아 가버린 ‘ 아이 러브 유모 댄 유일 에버 노 ’ 와 ‘ 투 타이어드 ’ 등, 그의 기타연주와 노래가 강하게 심장을 뚫고 들어왔다. 봄이 무르익어가는 밤에 감상하는 귀한 공연에 역시 오길 잘했구나 생각하며 이렇게 생동의 환희를 맛볼 수 있게 해준 그가 고맙다.

 

1990년 최고의 희트곡이였던 불후의 명곡 ‘ 스틸 갓 더 불루스 ’는 천안함 희생자들에게 바친다고 했다. 백령도에서 안타깝게 숨진 해군병사들에게 음악을 바치고 싶다던 그의 약속은 지켜졌다. 순간 객석은 조용해지며 모두들 숨죽이며 Still Got the Blues를 듣는다. 그러다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따라 불렀다. 게리무어의 노래를 좋아하는 이라면 이 노래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스틸 갓 더 블루스는 우리에겐 너무도 귀에 익은 노래였지만 그러나 이 감동을 어찌 말로 표현하랴.

그것은 전율 이였다. 지상에 홀로 남은 듯한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온 몸과 정신을 파고 들어오는 매혹적인 음악의 감동 앞에 시간가는 것도 잊고 객석은 모두가 심취해 있었다. 그의 연주와 노래는 영혼의 소리였다. 출가 수행자가 어떤 경우에도 여여함을 잃지 말아야 하는데 어쩌랴? 나도 잠시 그 속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이런 나를 보고 옆에 앉은 황선생이 한마디 한다. ‘ 스님은 하나도 아픈 것 같지가 않네 ’ 그랬구나. 깜박했나보다. 내가 감기몸살로 아픈 몸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던 모양이다.

게리무어는 ‘ 내년에 다시 보자 ’는 인사와 함께 맨 마지막 앵콜곡으로 ' Parisenne Walkways 를 선물했다. 70, 80년대를 주름잡았던 세계적인 팝음악의 거장 게리무어의 공연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영원한 전설의 하드록 기타리스트의 방한은 내 감기마저 꼼짝 못하게 했는지 늦은 밤 시흥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픈 것도 다 사라지는듯 했다.

 

2010 . 4 . 30

 

 

 

 

 

 

 

 

 

 

 

37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