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공연 감상글

유키 구라모토의 콘서트에 가다

최승헌 2007. 6. 10. 16:30

 

 

 

 

                                        유키 구라모토의 콘서트에 가다

 

                                                                                  최승헌


                                                        

 유키 구라모토의 콘서트에 갔다. 그가 한국에 공연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팬으로서 오늘을 많이도 기다렸다. 봄도 여름도 아니면서 아스팔트 위로 더운 열기만 뿜어대는 5월의 햇살이 어느새 땅거미 속으로 들어가 버린 시간, 서서히 어둠이 깔리는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로 가는 계단을 오르며 내 마음 한구석은 그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행복감에 충만해 있었다.


 아직 연주회가 시작 되려면 한 시간은 좋게 기다려야 하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공연장 앞에 줄을 서있다. 이십대의 젊은이로부터 중년의 여성들, 그리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신사에 이르기까지 구라모토의 팬들은 다양한 것 같았다. 하지만 들러 보아도 스님은 나 혼자뿐이다. 그래도 여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지 누가 나를 쳐다보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다. 어딜 가면 평범하게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이 제일 불편하다.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와도 무관치 않는 것인가 보다. 생각해보면 남의 시선이 불편하다는 이런 마음도 다 수행이 부족해서 발생되는 생각일 것 같다. 남이야 보든지 말든지 사소한 것에 무심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기다리는 동안 공연장 근처에 있는 음반 가게에 잠시 들러 새로나온 음악 CD를 살펴보기로 했다.

나는 인터넷으로 미리 표를 예약하고 왔기 때문에 조금 있다 자리만 배정 받으면 되니까.


 구라모토의 연주가 있어서 그런지 그의 피아노 연주곡이 담긴 음악 소리가 넓은 광장 까지 들리고 있다. 나는 그의 음반을 여러 장 갖고 있기에 요요마의 첼로연주가 실린 CD를 한 개 샀다. 언젠가는 내가 소장하고 있는 많은 음반들도 다 버려야할 집착의 부산물들이겠지만 아직은 못 버리고 있다. 수행자가 세속인들의 마음과 같아서야 되겠냐만 그러나 어쩌랴.

내가 좋아하는 음악 속에서 때로는 이렇게 마음을 쉬어가고도 싶으니...  

나는 구라모토와 마찬가지로 요요마도 좋아한다. 중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프랑스 태생인 그는 4살 때부터 첼로를 연주한 세계적인 연주가이다. 지금까지 50여장의 앨범을 발매했고 그래미상을 13회나 수상했다. 대표작은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이며 그는 강하고 거친 듯 하면서도 중후한 첼로를 연주하는 탓에 이미 국내 음악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서양의 고전음악을 탈피하여 다양한 음악적 상상력으로 팝음악 연주에 뮤지컬까지 해내는 대중적 음악가인 요요마는 이런 점에서 구라모토와 첼로와 피아노라는 각각 다른 악기를 연주하고 있지만 음악적 성향은 많이 닮은 것 같다.


 얘기가 주제와 다르게 잠시 빗나갔지만 다시 구라모토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구라모토는 90년대 중반에 그의 주옥같은 피아노 연주가 담긴 음반이 국내에 선보이면서 그동안 11장의 라이선스 음반이 국내에 발매 되어 총 100만장이 넘는 판매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한국 팬들의 사랑과 관심 속에 유키 구라모토는 우리나라에 여러 번 다녀갔다는 언론 보도는 봤지만 나는 지금껏 한 번도 직접 그의 연주를 들어 본적이 없기에 더 가슴이 설레는 것 같다.


 드디어 구라모토의 콘서트가 시작되었고 예술의 전당 음악당을 꽉 매운 수많은 관객들의 모습에서 음대를 나오지도 않은 한 음악인이 혼자만의 피나는 노력으로 깊은 영혼의 열정이 담긴 음악을 창조해서 오늘의 이 자리에 우뚝 서기까지 얼마나 어려운 일을 이루어 냈는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피아노 연주 중간 중간 인사도하고 음악에 대한 설명도 했었는데 참 예의가 바르고 재미있는 사람 같았다. 자기가 토끼띠라고 소개 하면서 ‘ 여기 누구... 토끼 없어요? ’ 하며 객석을 둘러보던 구라모토, 그의 인간미 흐르는 소박한 모습에서 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크게 웃었다.

벗겨진 이마에 키가 좀 작고해서 나이가 들어 보였지만 음악가 특유의 차가운 면이나 세련미보다는 유머와 해학이 뛰어났던 그리고 무엇보다 관객들을 편하게 대해주던 따뜻하고 겸손한 모습이 그를 더 훌륭한 음악가로 보게 만들었다.

    

 서정적인 선율을 가지는 소악곡에 붙인다는 로망스, 그가 연주하는 로망스의 선율이 피아노 건반위로 새어 나와 귓가에 흐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관객들과 한마음으로 동화되어 버리는 듯 한 감동이 아름다운 음악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다. 그래서 조용히 숨을 죽이고 구라모토의 음악에 심취해 있다 보니 음악보다 더한 감동이 얼마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끔 감동이라는 단어에 걸 맞는 여러 가지 일들에 부딪힐 때도 있지만 만약 아무른 감동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적막하고 무의미할까?

특히 그중에서도 소리로 듣는 아름다운 감동, 이런 원동력이 있기에 인생은 그나마 생동감이 나는지도 모른다.


 로망스를 소재로 한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를 싫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의 음악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로망스의 선율에 잠겨 있으면 환상의 피아노 연주가인 구라모토, 그가 말하는 자연에 대한 동경으로의 사색이 떠오르고 조용히 일렁이는 맑고 푸른 강물에 드러누워 있는 느낌이 든다.

무엇이 이렇게 점점 그의 음악 속으로 빠져 들게 만드는지...

내가 산에 살지 않고 도심지에서 포교하면서 수행을 하고 있기에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이 있다면 바로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깊은 서정과 아름다운 감성의 향기로 국내 음악 팬들의 심금을 적셔주는 영원한 뉴에이지의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의 주옥같은 로망스의 선율이 바로 그 주범이니까.

그가 일본의 명문 도쿄공대 응용물리학의 석사과정까지 마친 학자에서 클래식을 비롯한 팝과 샹송 등 대중음악에 이르기까지 두루 섭렵하면서 전문음악가로 성공하기까지 그가 흘린 땀방울과 끈질긴 노력이 참으로 위대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깊은 밤, 연주가 끝난 음악당을 나오며 나는 오랫동안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감동의 한 자락을 붙들고 있었다. 그 감동이 유키 구라모토가 내게 위로의 선물을 한 것일까?

공교롭게도 오늘이 내가 설악산에서 무릎을 다친 지 꼭 1주년이 되는 날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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