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몸으로 지나간다

최승헌 2013. 5. 21. 09:58

 

 

 

 

 

 

 

 

 

세월은 몸으로 지나간다

 

 

 

                           최승헌

 

 

 

몸을 보면 살아온 세월이 느껴진다

몸의 곡선마다 거미줄처럼 쳐져있는 세월의 길은

가로등하나 켜져 있지 않은 어두운 길이다

언제 저렇게 암울한 길을 더듬대며 여기까지 왔는지

힘겹게 걸어온 저 길이 매섭게 몰아붙였나 보다

세월은 소리 없이 흘러가는 것 같아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반드시 그 흔적을 남기는 습성이 있다

누가 살짝 손만 대도 선명한 자국을 드러낸다거나

뜨겁고 차가운 말에도 자주 몸에 금을 긋는 것만 봐도 그렇다

세월은 몸을 통해 명줄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 살수록 몸이 보내는 신호는 많다

세월이 거름이 되었는지 몸 곳곳에 피어난 잡초들이

점점 제 영역을 넓히며 깊숙이 뿌리를 내리는 것도

기약 없는 만남과 이별의 길을 들락거렸던 흔적들이다

한 생애가 그렇게 온갖 몸살을 앓으며 지나간다는 것을

몸이 말해 주고 있다

 

 

현대시학 2012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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